Title: What am I supposed to do?

본문: Romans 8:1~17

오늘 부족하지만 제가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설교라고 생각하지마시고 그냥 속회때 한 형제가 나누는 간증이라고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들으시고 묵상하시고 그리고 뜨겁게 기도하시는 밤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형선고를 받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대신 죽으시고 우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믿으십니까? 믿어지십니까? 어떻게 믿게 되셨습니까? 여러분이 믿으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믿도록 해주셨습니까? 주일 설교시간에 목사님께서 이런 질문 하시면 저는 “뭐 저렇게 당연한걸 또 물으시나” 하면서 “아멘” 하고 넘어가곤 했습니다. 아무런 감동도 없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진짜 real 로 믿어지십니까? 아니면 좀 막연하십니까? 저는 제가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저에게 문제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제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저의 구세주임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지만 내가 그것을 진짜 믿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겁니다.

저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부분이 막연했습니다. 그냥 관념적으로 “그래 우리는 다 죄를 짓고 살지”, “맞아 성경에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라고 했으니”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은혜를 주셔서 제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전적타락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먼저 주셨고 그 빈공간에 말씀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말씀을 만나는, 즉 말씀되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나의 죄악들이 들어났습니다. 사실 이부분이 없으면 예수께서 대신 죽으신것에 대해 별로 감동이 없습니다. “내가 무슨 그렇게 죽을 죄를 지었길래” 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죄가 보이고 판단하고 심판하려고 합니다. 은혜를 입은 자는 자기죄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긍휼히 여기거나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게 됩니다.

누가복음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내가 진짜 큰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라면 나에게 빚진자에게 빚독촉은 하지 못하는거랑 맥락을 같이합니다.

, 내가 믿는다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실상 즉 real 되어서 삶에서 그 믿음의 결과물들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1장에서 그것을 믿음의 증거라고 표현합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나의 삶을 보면 내가 믿음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나의 삶은 어떠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그리스도인의 삶에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다시한번 더  잘못 생각하게됩니다. 다시말해 나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기위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게 됩니다.

이러한 오류는 동기가 죄성으로 인해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목표가 구원이 될 경우,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위해 열심히 경건한 생활을 하게됩니다.

알아야할 것은 그리고 분명한것은 우리의 Goal 이 구원 혹은 천국가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가기 위해 예수님을 믿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믿음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것이며 하나님 나라는 그 믿음의 결과입니다. 한 청년이 평생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목숨을 바쳐 아버지를 찾아줍니다. 아버지 다시 만나게 된 청년은 너무나 기쁩니다. 아버지이기에 사랑하고 기쁜것입니다. 아버지의 재산과는 상관이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때문에 다시 돌아가온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가난했으면 탕자가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잘못된 동기는 잘못되고 헛된것을 좇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구원만이 목적이 될 경우 이단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구원의 확신을 위해 사역을 하거나 전도를 하거나 신비스러운것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저의 이러한 오류는 에베소서 2:8 로 바로알게되는 은혜를 받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죄인됨을 깨닫고 나서 십자가에 대한 믿음은 나의 노력이 아닌 은혜로 받게된다는 것입니다.

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남편이 시키는 일은 정말로 하기가 싫겠지만, 정말 사랑하다면 그 일을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혜)이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점점 더이상 그 죄를 보기도 싫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죄를 참는것이 아니라 혐오하게 된다는 겁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삶의 기쁨의 원천이 달라지는겁니다. 목표가 달라지고 이유가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할때 가장 흥분되고 기쁩니까?

우리는 늘 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요한복음 3:17~21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으로 그 행위가 변화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선하님과 의로우심 거룩하심을 나타내서 영광을 돌리고 찬양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더욱 쉬지않고 기도해야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영광은 “당신은 왜 그렇게 변화되었습니까? 왜 그런 인생을 사십니까?” 질문에 “예수님 때문에” 라고 고백하는 것일겁니다.

그러나 저의 삶과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세상에는 수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까요? 사실 멀리갈 필요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인데 왜 우리의 삶에는 변화가 없으며 주위를 변화시키지 못할까요? 예를 들어 우리가 전도를 하면 “당신이 믿는 거라면 저도 믿어 보겠습니다” 혹은 “도데체 예수가 누구길래 당신은 그러한 삶을 사십니까? 어쩌다가 그렇게 변화되셨습니까?” 라는 반응을 왜 듣지 못할까요? 두렵고 떨리는 대목입니다.

Conclusion: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죽고 예수께서 사시는 거듭난 삶이란 무엇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떤 열매들은 맺고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께 받은 그 은혜로 얼마나 가슴벅찬 하루하루의 삶을 사는지, 나의 고난의 근원이 나의 욕심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영광때문인지 말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기도로 은혜를 구하며 계속 전진해 나가야합니다. 나의 구원의 확신을 위해 바리새인과 같은 삶을 살지는 않는지 늘 긴장하며 늘 주시는 은혜로 감사하며 찬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하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말씀과 기도로 주님안에서 늘 평안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