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 했던 간증문입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기전 사람들에게 미국에 가면 교회를 잘 선택해야한다.. 사람들 조심해라.. 사람을 너무 믿지 마라... 교회에서 특히 시험에 잘 드니 조심해라등등 너무 많은 말들을 들었던 터라 미국에 오자마자 선듯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빛내리 교회에서 아무 활동 없이 예배만 참석하며 미국 온 첫 6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아르바이트 하던 비디오 가게 사장님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제일 연합감리교회에 처음 온것이 아마도 2005년 초 겨울이였던거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김윤재 집사님과 저와의 만남을 미리부터 계획해 놓았던거 같습니다. 잠시동안만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온 이 교회에서 저희 가족은 지금까지 지내며 너무 많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여러모로 쓰임받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먼저는 제가 반주자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반주자가 사역자로 사역자 회의에 같이 참석을 했었습니다.. 제가 사역자 회의 하는 동안 남편은 할일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동철씨에게 사역자를 위한 스텝이란 타이틀 주셔서 같이 사역자 회의를 참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그때 벌써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역자들과 같이 기도 제목을 나누었고 같이 고민하고 기도하며 교회를 향한 사랑이 점점 커 나갔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반주자로 섬기다가 약 2년전 뜬금없이 주일학교를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너무 큰 변화였습니다. 늘 교회에서는 피아노 앞이 저의 자리였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해 왔던 일이라그리고 반주는 내가 피아노 전공을 한 이유이기도 하기에 이 자리를 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일학교는 내 아이가 있는 곳이고 거기에 일꾼이 필요하다고 하니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주일학교 봉사를 통해 저는 아이들을 향한 눈이 너무 많이 바뀌었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내 자식만이 아니고 다른 아이들 아니 모든 아이들을 너무 이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전할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북한이나 이슬람지역의 강력한 군인들을 보면 철저하게 어린 나이에서부터의 교육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릴때부터 교육하는 것이 갈수록 악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배가 되는 가족을 주셨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시작하면 밤을 셀수도 있을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을 여러분들도 다 아실겁니다. 오랜시간 기다리다 생긴 하영이.  시트룰리미아 라는 희귀한 유전병을 가지고 태어난 하영이. 보통 이 병을 가진 아기는 태어난지 2주안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맘졸이며 눈물로 매일매일 검사 결과를 기다렸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제발 그 병이 아니길.. 그런데 검사 결과 하나하나 양성으로 나오며 결국 그 병을 가진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몸속에서 생성되는 독성물질 암모니아를 몸 밖으로 자연적으로 내어 보내게 되어있는데, 하영이는 이를 내보내는 사이클에 유전적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약이 없습니다. 고칠수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뇌에 이상이 생겨 장애아가 될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내려놓는다는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것 같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가진 딸누구나 부모가 그렇듯이 내 딸을 향한 나의 계획과 기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하지만 제발 목숩만 살려달라고 그러면 뭐든지 하겠다는 고백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녀를 향한 나의 욕심과 나의 오만함을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과 교회에 한쪽발만 담그고 언제든지 뺄 준비를 하고있는 내 자신을 철저히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하영이는 하나님것입니다. 얼마든지 쓰십시오, 저또한 하나님것입니다. 얼마든지 쓰십시오. 이제는 뭐든 순종하겠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생긴 영광이.. 영광이는 건강합니다. 근데 영광이 가졌을때 제가 문제였습니다. 연주를 앞두고 있던 터라 배아픈것도 참고 며칠을 앓다가 겨우 연주 끝나고 병원에 갔더니 맹장인것 같다고.. 이모든것을 진단 내리고 또 치료하기위해선 CT촬영을 해야하는데 그것이 x-ray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10배라고 하는데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니 안해야하는데 그 상황에서 선택에 여지가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보니 맹장이 터져서 새는데 그걸 모르고 방치하는 바람에 배속 염증이 생겨 복수가 찼답니다. 염증이 심하고 자궁수축이 심해서 맹장 수술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호스를 꼽아 복수를 빼 내고 항생제 치료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맞은 주사와 약들, 방사선. 말은 괜찮을꺼라 하지만,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아이가 무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자녀는 내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는걸 그 생사도 건강도 다 하나님에게 달렸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 시켜주셨습니다. 네네 하나님 영광이도 하나님 껍니다. 이렇게 저희 가족 모두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셋째는 저의 학업에 관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저의 공부에 대해선 아무런 계획도 정보도 없이 그저 남편 따라 이곳 달라스에 왔습니다. 유학생 와이프의 보험료는 한 학기 1200불이나 되었는데 그걸 그냥 내려다가 uta 어학프로그램을 1과목 등록하면 학생보험이 적용되어 보험료와 수업료가 합쳐서 같은가격이라는 얘기를 듣고 어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음악과에  performance certificate이라는 프로그램 역시 비슷한 금액만으로 풀타임 학생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저희 형편을 아시고 하나님은 너무 경제적인 수준에서 F1 비자로 내 전공 공부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부산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지방대 출신인 저는 알게 모르게 주눅들고 열등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UTA certificate, SMU 석사를 거쳐 UNT박사까지 이 동네 음악학교들을 두루 다니게 하셨습니다. SMU에서는 full scholarship을 받고 거기서 알게된 인맥으로 레슨과 반주 등을 하게되어 UNT학교의 학비도 충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잘것 없는 제가 여기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공부를 시작하고 우리 사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남과 기회들을 사용 하시어 경제적인 측면까지 세세하게 계획하고 인도하신것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보잘것 없는 나도 할 수 있구나, 나의 낮은 자존감을 하나님은 그렇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거의 10년 정도의 시간을 이곳 제일 연합감리교회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하나님의 살아계셔 역사하심을 깨닫고, 다시한번 하나님의 사람임을 체감하며 은혜로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신실하고 헌신적인 신앙의 선배님들을 보고 아..하나님의 일은 저렇게 묵묵히 순종하며 하는것이라는걸 배웠고, 많은 목회자 가족들과 교제하며 그들의 맘을 이해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들을 결코 잊지 몰할겁니다. 때때마다 챙겨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신 제일 가족들의 은혜도 절대 잊지 않을겁니다. 다른지역에 있지만 늘 제일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가는 저희 가족을 위해 앞으로 새롭게 만날 사람들과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